아내가 돌아왔다. 이제 끝났다

끝났다.
10일 동안 두 아들과 함께 한 홀아비 생활이. 끝났다.
이제 큰 아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아침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눈도 안 떠지는 둘째 놈의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겨 등에 업고 유치원까지 데려다 주어야 하는 고생도 끝났다.

30~40분이 늦은 출근으로 인해
고객사 담당자의 눈치를 보며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민망함도 이제 끝이다.
학교에 다녀와 오후 내내 집에 혼자 있을  큰 놈과 12시간을 유치원에 있을 작은 놈을 위해
칼퇴근을 하는 무모함도 이제는 끝이다. 출근도 늦었으면서…

어미새가 둥지에 있는 아이새들을 먹이기 위해
저녁을 사날라야 하는 것도 끝이고
매타작이 번번히 일어나는 숙제 시키기와 목욕 시키기, 안자겠다고 버티는 두 놈들과의 실랑이.
이 모든 것이
아내가 돌아옴으로써 끝났다.

프로젝트 진행은 엉망이 되었고
근 한 달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뱃살은 더 늘었으며
지하철 출퇴근에서의 독서는 힘에 부쳐 포기하기 일쑤였다.

10월 공개강의도 연기됐다.
내 삶 속에서의 시간관리는 3주 동안 ‘멈춤상태’였다.
2014년 내 10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 힘겨운 한 달이 의미없는 시간의 소모는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느껴지고 보였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내의 힘겨움의 실질적 무게가 온 몸으로 와 닿았고
돈 벌러 다니느라 외면했었던, 아이의 학습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되었다.
또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삶을 가르친다는 것의 소중함도 알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삶의 여전히 무겁고 힘들다)

나는 그 동안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주체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왔었다.
그 주체는 대부분 책이었고 혹은 강의였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책 대 신 내 삶 자체가 배움의 주체였고, 머리 대신 내 몸과 마음이 수용체였다.
외부체를 통한 배움과 학습이 전부라 생각했던 내 자세에 대한 반성이 일었던 한 달이었다.

아내가 돌아왔다.
이제 그녀에게 넘겨 받았던 바톤을 다시 넘겨 주고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간다.
내일부터는 삶의 기어를 다시 높이자는 다짐을 하며 잠이 들었지만
다음날 아침, 내려간 기어를 이전처럼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비록 시작이 삼진이었지만 아침 글쓰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 글의 마무리 문장으로 지금 유행하고 있는 영화제목이 생각났다.
Begi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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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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