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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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장인 <유망한 직장 – 팀개념이라는 유행의 허구>를 읽으면서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계적인 마스게임을 하는 삼성연수원의 영상과 군대식 얼차례를 행했던 신한은행 그리고 신입사원 대상으로 100km 행군에 앞서 여직원들에게 피임약을 제공했던 논란 기사.

25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오래된) 조직문화 형성 방법론이, 목적과 의도에 대한 이론적 탐구없이 구시대적인 군대문화와 섞여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괴물과도 같은 팀워크 프로그램으로 탄생해, 이 시대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대기업들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의 조직문화 혹은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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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서평을 이야기 해보자.
이 책 <일의 발견>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 혹은 직장이 사람들의 욕구와 그들이 집단에서 일하는 방법을 분석해 온 많은 심리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경영 컨설턴트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어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요약할 수 있겠다.

1부에서는 인류 문명사의 흐름을 통해 일에 대한 역사학적, 철학적인 전방위적 고찰이 시작된다. 2부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직장에서 일에 대한 패러다임이 어떤식으로 변모해 나가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3부에서는 책 제목에 걸맞는 일의 의미와 행복 그리고 의미에 대한 발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의 내용은 깊고 진지하면서도 내용이 방대하다.
일의 변천, 조직문화/기업문화와 관련해서 그 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깊은 통찰과 분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2부가 흥미롭게 읽혔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연구사례와 고찰이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하고 요약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 어느 한 파트도 녹녹치 않은 깊이가 있어, 파트를 읽어내기 급급해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을 만들지 못했다. 아쉽다.
저자 <조안. B 시울라>는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가를 다시 찾아 읽어본다.

일의 의미’ 뒤에 숨겨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정들을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이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살펴보고, 일과 삶에서 해왔던 자신의 선택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중략)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직접 그것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책은 어떤 종류의 삶이 바람직한가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선언하지 않는다.
일이 갖는 다양한 형태와 그 배경에 대한 고찰하고 일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 형태들을 비판적으로 볼 뿐이다.

책은 착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접했던 자기계발서 혹은 인문학으로 포장된 책들처럼 고대 그리스-로마의 위인들 혹은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방향을 사회/인문과학과 연계시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모델을 독자들에게 그려 보이지 않는다. 수 많은 사례를 인용하고 일에 대한 배경을 탐색하며 비판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 든다.
이는 책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일에 대해 본질을 살펴보게 하고 독자 스스로가 선택한 혹은 선택할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진다.

저자의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용으로 책을 마무리된다.
일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가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그 선택을 올바르게 해야한다.
내 선택으로 인해 버려지는 혹은 포기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룰 각오가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고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욕구는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가?
그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투자가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행복을 위한 많은 요소 중 하나가 투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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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관리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강의를 했던 때가 있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시간관리를 잘하고 싶어 했는데, 이들에게 유용한 솔루션을 주고자 했었다.
효과적인 솔루션을 주기 위해 강의를 개발하고 연구했지만 정작 본질 자체인 <일>과 <일과 삶의 관계>를 성찰했는가에 대한 시도가 없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역자도 번역을 하면서 이 깨달음을 알게 되었다고 책 마지막 장에 기술해 놓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생산성 향상, 시간관리, 협상법 등에 대해 그 어떤책 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2~3번 이상을 읽어야 내 것이 될 것 같은데, 그럴 엄두가 안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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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미국에 국한된 예시와 고찰 그리고 근로자 중심의 시각이 아쉽다는 글이 눈에 띄였다.
기본 성향이 비판적 견지를 갖고 있는 나이지만 이 두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의식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에 공감도 일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공들였다. 많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연구를 하면서 이 책을 내기까지 그녀의 학문적 깊이와 성실함이 있기에 이 깊은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본다. 그 성취에 대해 감탄스러울 뿐이다.
각 언어권 혹은 국가별에 대한 개별적 고찰은 이 책에 (혹은 저자에)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하면 될터이다.

책의 많은 부분에 인용되는 딜버트 만화는 위 지적이 다소 일리는 있어 보인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딜버트 만화가 한국에서도 소개가 되긴 했지만 IT관련 혹은 경제관련 미디어에 간혹 연재되는, 일부 덕후들에게만 인기 있는 그런 만화였기에 저자가 인용하는 사례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만 했다. (딜버트 만화는 조직을 꼬집는 핵심을 우화스럽게 표현한 만화라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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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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