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부모라는 잃어버린 초심

나른한 오후.
하품의 횟수가 많아졌다.
꾸벅졸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조용한 사무실 공간에서는 타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사무실 공간이 조용하다보니 여럿이 내는 그 키보드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린다.
아이폰의 벨소리가 울린다.
이 적막함 속에서 모두의 시선을 내게로 집중시키는 것 같아
얼릉 핸드폰을 집어들고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녀와의 통화는
순식간에 졸았던 나를 극도의 불안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녀석은 준비되지 않은 부모 때문에
부모와 같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사랑만 받기도 충분한데
매로 혼도 많이 났고
또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모든 사랑을
새로 태어난 놈에게 뺏기는 수탈의 경험을 겪어야 했다.

커져가면서
우리에 대한 사랑 표현방법이 점점 그릇된 방향으로 나타난다.
전형적으로 TV프로그램에 나오는 패턴처럼 말이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아이패드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기는 커녕
인내심을 부족하게 하고 폭력성을 더 키우는 꼴이 되어 버렸다.

유치원에서 받은 피드백이
그녀의 전화를 통해 내게 전달되었고 그 전화는 나를 불안함과 자책감이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맥북의 iPHOTO에 깔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병원에서 탯줄을 짤랐던 그 순간부터
기고, 뒹굴고, 엎지르고, 서고, 뛰며 놀던 그 사진들을…
그렇게 그렇게 사랑 하나만을 채워주었던
나의 소중한 아이가
나중에는 방황하는 청소년이 될 것만 같은 불안함에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속상하고 슬프다.
슬프다.
그 슬픔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슬픔이었다.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결국 나를 좋아하지 않는 자녀를 만들었구나.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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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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