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전거 일주기

[프롤로그]
한강은 자전거를 타기에 참으로 좋은 장소입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아 내달리는 맛은 가슴에 청량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로드라서 그 맛은 훨씬 시원합니다.

한강은 낮에도 좋지만 야경도 멋져서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라이딩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한강에서 타는 것도 이리 즐거운데,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면 얼마나 황홀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와이프의 허가를 받아 제주도행 항공티켓을 예매하고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나랑 애들 없이 혼자 가면 좋냐?”라는 질책은 못들은채 했습니다)

 

[집 식구들을 떼놓고 혼자 떠나는 대범한 여행]
이번 제주 일주의 컨셉은 라이딩입니다.
주요 여행지 관람은 별로 관심도 없었고
멋진 배경을 뒤로 한 일주 라이딩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종의 전지훈련이랄까요? ^0^
(‘줄곧 페달링만 하는 게 무슨 재미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으나
라이딩 자체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ㅎㅎ)

 

[Part01. 여행의 준비와 도착]
저는 계획주도적인 기질이라 여행을 준비할 때는 철저히 준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대충 출발했습니다.
가볍게 자전거만 달랑 들고 갔다오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전날 야근으로 밤12시에 들어와서 짐싸고 다음날 새벽에 나갔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준비할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전거 포장이었습니다.
이 준비는 철저함을 필요로 했기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련된 조사/실행역량을 꺼내 들었습니다.
공항에서도 수하물을 포장하긴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라 그닥 미덥지 못하더군요.
또 자전거를 공항까지 가지고 가야하는데 그것도 고민이었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동네에 있는 자전거 전문샵에서 분해/포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원래는 분해/포장해서 제주도 자전거 샵으로 택배로 보내는 방법이 가장 좋은데
전날 자전거 행사가 있어 보내지는 못하고 내가 직접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샵에서 포장을 한 후, 포장박스를 들고 공항버스를 탔습니다.
이전에 조사한 바로는 15Kg까지는 추가 수하물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고 했는데
막상 티케팅을 하다보니 2달 전(현재일 2013.10 월기준)에
레저물품은 무조건 추가 10,000원을 부담해야 하는 걸로 바뀌었다 하네요.
돈 만원을 떠나 무덤덤하게 응대하는 창구직원 때문에 기분이 좋진 않더군요.
뭐 할 수 있나요. 울며겨자먹기로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Part02. 페달링의 시작 – 80Km]
그렇게 비행기는 제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자전거 샵에 전화를 하니 픽업을 나오셨고
해당 자전거 샵으로 이동해서 가지고 온 자전거 포장을 풀고 조립을 시작했습니다.

조립 후에는 자전거 상태도 한 번 봐주셨구요.
사장님께서 지도를 펴고 일주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셨습니다.
브리핑을 듣고 난 후, 용두암을 시작으로 시계반대 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합니다.
(시계방향은 바람을 안고 달리는 여행이라 자전거 일주는 반대방향으로 달린다고 하더군요)

 

[제주 전문샵에서 자전거를 다시 조립]
한강만 보다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내달리는 맛을 몸으로 느끼다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업되더군요.
(나중에는 이게 결정적인 문제의 요인이 됩니다)

마음이 들뜨니 페달링도 가벼워 3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쾌속질주를 시작합니다.
‘잘 왔구나. 이게 바로 힐링이구나’
하지만 점점 날씨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립니다.

일기예보에는 없었지만 제주날씨는 워낙 변덕스럽다고 하더군요.
첫째 날은 그렇게 하루종일 비가 왔습니다.
다행히 저지를 입어 상/하의는 문제 없었으나 문제는 신발이었습니다.
신발과 양말이 다 젖은채로 페달링을 하려니
상쾌했던 그 라이딩의 즐거움은 온데간데 없이 그냥 달릴 뿐이었습니다.

내 안경에 맷힌 빗물을 보며 달리다 보니
자전거 애니메이션 <슈트케이스의 철새>의 철새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비오는 날 라이딩을 하는 주인공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출 장면.
갑자기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이 일어 기분이 고양되었습니다.
‘저지를 입고 빗속을 달리는 모습도 꽤 괜찮은 걸’이라는 자기최면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이 자뻑이 없었다면 궁시렁거리며 첫날을 달렸을 뻔 했네요.

출발하기 전에
50분 라이딩 후, 10분 휴식 혹은 40Km 라이딩 후 15분 휴식이라는 나름의 계획을 세웠었는데
막상 일주를 하다보니 지키기가 좀 애매하더라구요.
초반에 괜히 업되서 오버페이스 한 것도 치명타였구요.

첫날 산방산근처까지 대략 80km 거리를 달렸습니다.
후덜거리는 허벅지를 끌로 숙소로 들어가서 바로 뻗어 버렸습니다.
이 후기를 참고하실 분들은 절대 오버페이스를 주의합시다.

 

[둘째날, 성산일출봉까지.. (100 Km)]
둘째날 일정은 산방산에서 서귀포시(중문)을 거쳐 성산일출봉까지가는 대략 100 KM의 거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네요.
비는 그치고 햇살이 나온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덜덜거리는 허벅지를 보며 ‘중간에 낙오되는 건 아닌가’ 했지만
막상 안장에 오르고 나니 페달링이 되긴 하더군요.
중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시위를 하고 있는 강정마을을 거쳐 성산을 향해 계속 페달링을 시작합니다.

둘째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언덕과 바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무슨 언덕이 그리도 많은지 허벅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많더군요.
근데 올라간 기억만 많고 내려간 기억은 많지 않아요. ㅠㅠ

자전거 초행자들이 이 구간에서 퍼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그제서야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제주도의 자전거 도로에 대해 이야기 해볼께요.
제주도 일주용 자전거 도로 유형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인도블록 형식이고 하나는 갓길 형식인데, 로드에게는 갓길방식이 좋습니다.
인도는 출입차로를 위해 중간중간 자주 끊겨있으며
무엇보다 턱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지 않아요. 낮추긴 낮추었으나 그것도 높다는.. ㅠㅠ
MTB는 쉽게 넘나들 수 있겠지만 로드는 어려웠어요.

더구나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인도블록 턱을 올랐다간 넘어지거나 펑크나겠더군요.
오히려 갓길방식으로 도로옆에 경계표시와 함께 만들어 놓은 자전거 도로가 훨씬 좋았습니다.
서귀포에서 성산쪽은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잘 포장되어 있는 제주 일주 자전거 도로] 오히려 인도블록 방식은 초기 제작 및 유지보수에 비용이 많이 들텐데
정작 자전거에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 글을 제주도에 있는 관계자가 읽으면 좋을텐데, 그럴 일은 없겠지요. ㅠㅠ

서귀포에서 성산까지의 구간은 해안도로 연결이 잘되어 있지 않습니다.
끊겼다가 연결되었다가 다시 나와야 하는 시행착오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한참을 신나게 내리 달렸는데, 길이 막혀서 다시 언덕을 올라와야 하는 그 좌절감.
지도를 확 찢어버리고 싶더군요. 흑흑~

내 막힌 시야가 확 펼쳐지며
바다가 보여지는 길을 달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달리는 내 자신조차 풍경의 하나로 녹여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느낌이 일상에 찌든 내 스트레스를 날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숙소로 들어가서도 허벅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목욕탕을 찾아 뜨거운 물에 온몸을 지진 후, 파스를 사서 붙이고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잠도 안오고 선잠만 들뿐이네요.
내일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마지막날, 제주를 향해 – 60Km]
마지막 날에도 비 대신 햇살이 내 등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바람이 장난 아니네요.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15Km를 못넘기더군요.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등 뒤로 한 채, 제주시를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서부쪽은 동쪽과 달리 바다 빛깔이 점점 더 에메랄듯 빛에 가까워지더군요.
해변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도 보면서, 초등학생들의 라이딩 여행도 보면서 달렸습니다.
풍광은 이쪽이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몇 번 제주 여행을 갔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함덕서우봉 해수욕장입니다.
멋진 바다 빛깔과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가 있는 함덕서우봉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나몬 가루가 얹어진 따뜻한 라떼를 마시며
함덕의 바다를 보는 그 풍광을 이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네요. ^^

마지막 휴식을 취한 후, 함덕에서 제주까지도 꽤 많은 거리를 달려야 했습니다.
그 마지막 루트는 시골의 지방도를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위험하고 재미없고, 풍광은 을씨년스러운….
그렇게 그렇게 마지막 일주를 마치고
자전거 샵으로 복귀하여 자전거 분해/포장을 맡기고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 일주 여행을 마칩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버스에서 내려 너덜너덜해진 허벅지를 이끌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그렇게 빡쎄게 타서, 힐링이 되었어?’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달리고 싶은 자전거를 2박 3일내내 탄 느낌은
그저 무덤덤하네요.
여행을 마치고 출근한 그 다음 날 내 몸은 천근만근입니다.
아무데나 가서 눕고 싶은 심정 뿐. ㅠㅠ
몸은 피곤해도 이번 일주 여행은 꼭 후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나 이렇게 후기를 씁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혹은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 여행을 했었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화두가
후기를 쓰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참 그리고 하나 더.
한강이 자전거를 타기엔 참으로 좋은 장소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니 일상에서 평범함이 값진 것이다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는군요.
다음에는 대만 일주 해보고 싶네요.

 

FIN.
[제주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는 이들의 고민 – 짐을 어떻게 하지?] 일주를 계획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짐이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로드로 일주를 한다는게 녹녹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저지를 입고 가방을 메고 달린다는 건, 스타일이 망가지잖아요.
(뭐니뭐니 해도 로드는 간지가 아니겠습니까? ㅋㅋ 허세 작렬모드)

다행히 동생놈이 스쿠터로 합류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처럼 등에 배낭을 맨채 일주를 했어야 했을지도…
그럼 이번 일주가 더 힘들었을테지요.
다음 일주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벌써 고민이네요.

[제주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는 이들의 고민 – 펑크에 대한 대처] 솔직히 이 부분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펑크가 나면 중간에 비용이 들더라도 자전거샵에 도움을 청하려 했습니다.
펑크패치용품을 사고 수리방법을 배우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챙기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싶어 그냥 제꼈습니다.
(다음 라이딩때는 펑크패치는 배워두어야 하지 않겠나 싶네요)
다행히 한 번도 사고도 안나고 펑크도 나지 않고 일주를 마무리 했네요.
신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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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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