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스를 보고 나서

나와 교류하는 와우들은
내가 Jobs가 운영했던 애플 제품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익히 잘 알고 있을겁니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아이폰은 물론이며
이 글도 애플이 만든 노트북인 맥북(MacBook)으로 작성하는 중이니까요.

이처럼 나는 애플이, 아니 잡스가 추구하는 그의 철학과 미학이 녹여져 있는 제품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 전 영화 잡스(Jobs)가 개봉 했습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Book)를 읽고 있는 터라 영화 개봉 소식은 내게 반갑게 들렸습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터라 토요일 조조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예상과 달리 영화관은 한적하더군요.

영화 잡스(Jobs)는 전기와 조금 다릅니다.
상영시간이라는 제한이 있는터라 전개가 조금 빠르며
대중의 흥미를 맞추기 위해 각색한 특정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해의 여지란 그를 너무 미화시켰다는 것인데,
이는 이 영화의 비평적 피드백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스티브 잡스라는 전기가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는 잔잔한 즐거움이 있었다면
영화 잡스(Jobs)는 빠른 전개와 감각적 영상, 재연된 사실 인물의 재미를 보는 게 다르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전기가 생각났고)
‘한 위대한 사나이가 가진 열정과 성취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열정과 성취의 끝판왕을 봤다랄까요.

그와 가까이에서 지낸 이들은 (주로 애플과 픽사의 직원이겠지요)
그의 고집스럽고 이기적이며 괴팍한 성격을 단점으로 이야기 합니다.
일반인들은 그의 놀라운 업적 때문에 잘 몰랐겠지만
애플과 잡스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공감을 안할지는 모르지만
2000년 후반에 정보통신 산업군에 대단한 영향을 준 사람으로 전 기억합니다.

그가 만든 아이폰은 디자인과 기능을 둘째치더라도
통신사들이 가진 독과점과 권력들을 한 번에 무너뜨렸으며
앱(스마트 폰에 깔리는 고유 프로그램)이라는 고유한 생태계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겠겠습니다.
다시 성취라는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유한 생태계를 만들고 정보통신에 지대한 업적을 세웠던
그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와 전기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신이 내게
‘너도 잡스처럼 살고 싶다면 내가 그런 힘과 능력을 주겠다. 그런 삶을 살고 싶으냐?’
라고 묻을 때
내 대답은 ‘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내 스스로 놀랐습니다.

와우와 유니컨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계획과 성취에 능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유형이 나인데
저 놀라운 제의를 거절하다니 나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각에서 나온 가정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알렉산더나 징키스칸, 잡스처럼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한들
‘그것이 진정 내가 태어난 이유일까?’
‘그 놀라운 업적이 신이 볼 때는 어떤 의미일까?’
라는 의문이 나를 사로 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경계하려는 본능이 발동했습니다.
‘성취하지 못한 루저들이 혹은 찌질이들이 말하는 자기 합리화에서 나오는 생각은 아닐까?’라고..
객관적 균형을 이루어보려 그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이 아님은 분명했습니다.
정확히 말할 수 없었지만 내 직감에선 아니다라고 말해 주었으니까요.

천재였던 잡스의 영화와 책을 통해
열정과 성취로 잃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이해와 인식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내게는 그 어떠한 인문책이나 철학책보다 사유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의미에서
소중하고 의미있는 책과 영화였습니다.

한편으로 명성보다는 행복과 관계를 택하겠다는 나의 선생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는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잡스가 굉장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역시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했고
세계가 조롱할만한 실패 이후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사회 테두리안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맺으며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결코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달란트만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었던 것이니까요.
오히려 그 달란트 만으로 성과를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성과를 창출하려 했는지?’
‘누구를 위해 열정을 발산하는지?’

요즘 나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취의 기질과 가족이나 관계가 주는 기쁨이
삶에 주는 진정한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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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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