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자기 앞의 생

B

01.
클라이막스로 다달을수록 내 감정은 동요되기 시작했고
마지막 대목의 책장이 넘어갈 때는 내 시울은 매우 촉촉해고야 말았다.
촉촉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야 타인의 시선이 부끄러워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하지만 북받쳐버린 내 감정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다.
감수성이 낮은 이성적 사고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가득한 한 남자를 울릴 정도로 말이다.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의 위대함 앞에서는
어설픈 깜냥이나 비판적 사고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저 파도처럼 나를 향해 덮치는 감동을 온 몸으로 맞을 뿐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행운이며 읽게 해준 그 무언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해의 베스트 책에 선정됨에 있어 검토의 여지가 없겠다.

 

02.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랍인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불법입국을 감행하는 곳이다.
한 방에 열 명 이상씩 자기도 하고, 아무데나 오줌과 똥을 싸는 그들의 주거시설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먼 이국 땅에서 희망을 갖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프랑스의 많은 창녀들이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대부분 창녀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엄마 혹은 아이들을 발견하거나 신고하면
아이를 바로 보호시설로 보내버려 아이와 엄마는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녀 엄마들은 아이들을 도맡아 키워주는 곳에 맡기고 키워주는 댓가로 매월 일정 금액을 송금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끊겨 버리기가 다반사다.

어쨌든 이런 아이들을 맡아서 키워주는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주인공 모모의 평생친구인 로자 아줌마다.

주인공 모모 역시도 창녀 엄마에게서 버려진 자식 중 한 명이다.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길이 없다. 다만 창녀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일 뿐.
엄마가 창녀이니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길은 더욱 막막하다.

몇 년이 지나자 모모도 엄마로부터의 송금이 끊기지만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내쫓지 않고 평생을 같이 한다.
오히려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의지한다.
로자 아줌마 집에 있던 아이들이 다 나가고 건강 때문에 더 아이들을 맡지 못하게
로자 아줌마 곁에는 모모만이 남게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자 아줌마는 건강이 점점 안좋아진다.
나중에는 거동도 할 수 없어 자신의 힘으로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다.
비록 가난하지만 다양한 국가 출신인 이웃들이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돕는다.

 

03.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로자 아줌마가 점점 건강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로자 아줌마는 뇌에 문제가 생겨 자주 의식을 잃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을 절대 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모모에게 부탁한다.

병원에서는 자신이 존엄하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뿐 아니라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계속 치료라는 명목으로 두는게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니 자신을 절대 병원에 보내지 말 것을 다짐받는다. 모모는 이를 끝까지 지킨다.

이웃 중에 마음씨 착한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빨리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약속 때문에 그러지 말아 달라고 의사에게 울며 사정 한다.
아줌마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아줌마와 약속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고향인 알제리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왜 여기서는 안락사를 못하느냐고 울부 짖는다.
태중의 아이는 죽이면서 안락사는 반대하는 당신들과 같은 이상한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의사를 따진다.
의사는 아직 모모가 어려서 잘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다.

 

04.
로자 아줌마의 의식이 자주 끊기고 육체는 이제 아예 말을 듣지 않게 되버린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실려가는 것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지하실에 있는 그녀의 은신처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로자 아줌마의 임종을 함께 한다.

로자 아줌마가 잘나갔던 창녀인 시절의 기억을 지켜주기 위해
죽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계속 덧바르며, 온 몸에 비싼 향수를 뿌려준다.
모모는 자신이 아픈 것도 마다치 않고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킨다.

배가 고프면 지하실에서 나와 돈을 훔쳐서 밥을 먹고
다시 향수를 사가지고 지하실로 들어가 로자 아줌마의 몸에 다 끼얹어 준다.
건물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악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지하실로 들이닥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느낀 슬픔이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도 다시 되살아남이 느껴진다.

 

05.
이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고 나서
작품이 상징하는 표현과 생의 의미들을 글로 쓸 수 없다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을 읽게 만든 그 파워블로거의 리뷰 역량이 존경스러워졌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나니,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픈 감정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 느낌을,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답답함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적어 보는 것이었다.

책 마지막에는 소설가 조경란씨의 작품평이 실려 있었다.
그 평에 의하면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이 다른 아닌 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과연 내게 있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생(Life) 혹은 삶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늙은 창녀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함께 그녀를 지켜주었던 모모에게 생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부분을 말하려 했을까? 매우 궁금해졌다.

생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 작가 역시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문호가이지만
지금은 책이 전해준 슬픔에 흠뻑 빠지고 싶어 따로 적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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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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