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모시고 살았던 나의 소비 행태

우리집은 신혼생활을 시작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5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5번을 이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는
첫번째 이사를 할 때 쌌던 짐이 4번째 이사를 할 때까지 그대로 풀리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면서 가격이 싼 물건이 보이면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하지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테니 사두자’라는 자기타협은
모든 것을 다 이겨버리는 아주 강력한 설득의 카드니까요.
(그와 정 반대의 경우도 많지요. 안 쓰고 안 산다는 소비절제의 가치미덕을 지향하는 경우에 대한 글은 따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 물건들은 언젠가는 커녕, 영원히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용하게 되더라도 한 번 정도 쓰고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나타난 물건이 우리집이 4번째 이사할 때 포장이 든 채, 그대로 발견된 박스입니다..

어떤 것들인지 더 있는지 한 번 볼까요?
결혼할 때 찍었던 야외촬영 앨범이 가장 대장 케이스입니다.
이 웨딩앨범은 신혼여행 후 집들이 때 한 번 펼쳐진 이후에는
골룸이 가졌던 반지처럼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직접 집수리를 위해 샀던 페이트 통과 붓은 베란다 내팽겨쳐져 비에 노출되 뚜껑이 녹슨 채로 그대로 재활용통에 버려졌고,
하루에 하나씩 뜯으며 나의 예술적 감각을 드높이겠다는 욕심으로 산 고흐의 365 캘린더는
15일만 뜯겨진 후, 2년 후에 재활용 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옷을 잘 정리하는 일본의 달인이 만들었다는 옷 접는 기계는
두 번도 쓰지 못한채 어디에 쳐 박혀있는지 알 수도 없으며,
싸구려 덤벨세트는 모래로 채워진 덤벨이 어이없이 부서지며 소파 한 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가져온 A4용지와 문구류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잉크가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그대로 있기도 합니다.

기억을 더 더듬에 보면 이것 말고도 더 많이 나올 겁니다.
그러다 나의 소비관점을 바꾸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창 보드게임에 빠져 있었을 때, 집에는 대략 80~100개 정도의 게임이 있었습니다.
물건을 애지중지 하던 버릇이 있어 모든 보드게임에 들어가는 카드는 별도의 보호 비닐로 모두 씌웠었습니다.
보드게임은 종이 재질이라 쉽게 구겨지거나 상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지요.
심한 경우에는 한 장 한 장을 일일히 코딩을 해서 플레이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한 3년이 지났을까,
보드게임이 너무 많아 중고로 내놓기 위해 정리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한데 정리를 하면서 보니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게임들도 있었고,
너무 아까워 5번의 플레이도 못한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비닐로 씌워서 보관하고, 코팅을 해서 보관했던 게임들은 모두 다 다른 주인들을 향해 팔려 나갔습니다.
오히려 플레이를 너무 많이 해서 닳았던 게임들은 아직도 우리집 서재에 남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차라리 부담없이 즐겁고 즐기고,
그것이 더 이상 못하게 되었을 때 또 새로 사면 될 것을이라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뭔가를 너무 소중히 여기는 착각에 ‘그것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모시고 살았구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부터 물건을 구매한 이후에는 더 이상 모시고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물건의 수명이 다했거나, 잃어버렸을 때에
내가 그 물건을 충분히 즐기거나 사용했다면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잘썼다’라는 시원섭섭함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때는 후회가 남거나 혹은 억울함이 마음 속에서 배어나왔습니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산 물건에 대해
그것을 얼마나 유용하게, 혹은 충분하게 잘 쓰고 있는지도 또 하나의 스마트한 소비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골우려먹듯이 얼마나 그 물건을 징하게 쓰고 있는지 말입니다)

무조건 안쓰고 안산다.
혹은 무조건 절약이라는 새마을 운동 구호는 더 이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물질만능주의가 나쁘긴 하지만 물건이 주는 진한 행복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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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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