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마담 보바리

B

1.
책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끝난 맨 뒤에 실려있는 작품해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해설 내용 중에는
플로베르가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가에 대한 기술이 있었다.
글의 미적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글자 하나하나에 고심한 플로베르의 노력에 대해서.
‘플로베르가 이런 작가였구나…’

플로베르가 가진 작가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문학에 있어서 예술적으로 훌륭한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인 이브토를 그리건
유명한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그리건 결국은 마찬가지다’
라고 한 플로베르의 말은 결국 무엇을 그리느냐보다는 어떻게 그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가치를 가진 플로베르에게 갑자기 호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가치 역시도 그와 동일하니까.

 

2.
<마담 보바리>에는 보바리 부부을 둘러싼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플로베르는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현실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군상들을 작품에 잘 담아내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읽었고
내가 리뷰를 쓰기 위해 나의사고를 분석적 모드로 전향시킨 후에야 난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이 가진 강점 중의 하나를…
(사랑에 빠진 이들의) 마음 심리를 플로베르는 참으로 잘 묘사했다. 외향적인 묘사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플러 나무 밑에서 키스를 하는 보바리 부인과 로돌프가
사랑에 빠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감정을 표현한 부분이라든지
레옹과 마담 보바리가 탄 마차 안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걸까?라는 미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 등은 플로베르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가장 탁월한 대목들이다.

 

3.
책을 읽는 처음에는
한 사람이 욕망의 유혹에 빠지는 흐름이 읽혀졌다.
유혹에 거리감을 두었다가 그 유혹이 다가왔을 때 저항하고,
그 유혹에 빠진 후에는 후회하고 각성을 통해 단절하려고 하나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결국 유혹의 늪에 깊게 빠져 버리게 되는 그 이야기의 흐름.
욕망의 덫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플로베르가 살던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저속적인 소설, 된장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현대판 사랑과 전쟁으로 소개되는 <마담 보바리>가
통속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에 도전했던 플로베르의 용기에 시선이 간다.

 

4.
여기까지 리뷰를 쓰고 나자 더 많은 내용을 담기에는 어렵고 힘에 부쳤다.
어렵다는 말은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에 빠졌을 뿐,
이 소설의 가진 매력 포인트나 위대함으로 일컫어지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꼽아내는 안목이 전혀 없음을 내 스스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이대로 후기를 마치기에는 아쉽다.
다른 이들은 마담 보바리를 어떻게 읽었을까?
그들의 눈에는 마담 보바리의 어떤 대목들이 인상적이었을까를 검색해 본다.
잘 써진 블로그의 리뷰를 읽고 난 후에야 <마담 보바리>가 가진 힘 하나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이 소설의 위대함을 가로막던 안개들이 걷히기 시작한다.

 

5.
마담 보바리라는 호칭을 갖기 이전 그녀의 이름은 엠마였는데,
엠마는 처녀시절부터 일종의 허식을 갖고 있었다.
책도 읽을만큼 읽고, 피아노도 칠 줄 알며, 수도원에서의 교육도 받았기에 자신에 대한 자부심 혹은 자존감이 넘쳤다.
그래서 시골마을의 진부함은 그녀가 모든 것을 시시하게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그녀를 둘러싼 욕망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S극이 N극을 당기듯이.
이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불륜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타는 불륜이 아니라 고리대금이니까.

이 소설의 핵심은
연애소설을 읽으며 자란 한 여자가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살기 위해 욕망을 좇다가 파멸해 가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보바리즘이라는 말이 유래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 그것을 쥘 고티에는 보바리즘이라고 명명했다.
<마담 보바리>는 사람 사는 곳이면 흔히 일어나는 실제 불륜사건을 소재로 한 가장 통속적인 소설이자
욕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가장 현대적인 작품으로
너무나 평범한 줄거리 자체가 우리를 문제의 핵심으로 인도해주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란 이 소설이 탄생하기까지의 방대한 창조의 드라마와 그 드라마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
즉 내용과 형식, 혹은 주제와 ‘스타일’이라는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주는 위대함은
기다림과 환멸이 반복되던 주인공의 삶을 재현하는 소설의 구조,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시대의 어리석음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 http://blog.naver.com/ace/60192538782)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보바리즘이 장착된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가는 리뷰어들의 탁월한 해석을 접했을때는 사실 겁이 났다.
나 역시 <모바리즘>을 갖고 있는 듯 했고, 그렇기에 그녀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에…

‘바람녀가 마지막에는 음독자살을 했다’라고 정리되는 소설 하나에서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내가 혹시 지적허영의 보바리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하게 해 보게 할 줄은 몰랐다.
새삼 이 소설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런 사유를 갖게 하는 것이 고전문학이 가진 힘 중에 하나라고 해석해도 되는걸까?

 

6.
GLA 수업 때문에 고전문학을 읽는 기회가 많아졌다. 심지어 학창시절때 보다도.
<고도를 기다리며>, <아내들의 학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등.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얻은 유익으로는
의외로 고전문학이 딱딱하기보다는 나름 읽히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수백년을 내려온 고전문학이 갖고 있는 그 위대함에 탄복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점차 고전문학이라는 신대륙을 탐사해 나가는 과정임엔 틀림없다.

소설이 가진 위대함은 해석을 곁들일 때야 비로써 알게 되는데
이런 역량부족에 대한 아쉬움보다 ‘고전문학 까막눈을 탈패했다’라는 만족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우 한 명이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고 했다.
그녀가 무슨 연유로 올해의 책을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이 책이 강력한 올해의 책 후보가 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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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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