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주는 부정적 느낌

바램과 기대는 내려 놓고 오히려 작은 각오를 하고 갔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절대시간을 채우지 안았으니까.
오히려 돈을 받으며 연습 기회를 잡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좋은 기회다.
강의장에서 그들을 처음 대면했다.
지금까지는 맞닥뜨려보지 못한 블루 컬러들이다.
그들은 회사 집체교육으로 끌려온 포로들이었다. 보너스로 청중들의 평균연령 기록도 갱신해 버렸다.

그들은 강의실에 입장하자마자 멀티탭을 콘센트에 연결하고 자신들의 스마트폰 충전기를 꼽았다.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오는 대신 그들의 처지에 공감이 일었다.
왜냐하면 그 행동들을 보는 순간 내가 몇 해전에 참여했던 예비군 교육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들 벽 뒤 사각지대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했던 그 예비군 교육.
몇 해 전에 내가 지금은 마이크를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환영의 박수는 아주 잠깐이었고
청중들의 반은 고개를 숙인채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강의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과 아이컨택을 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보고 소설책을 읽으며 엎드려 잠을 자는 청중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나는 무언가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청중들을 이해했다면 유익이 모자라더라도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심적 훈련이 되었는지, 아니면 멘붕상태라 정신이 나갔었는지
들락날락하는 청중들과 서로 간에 잡담하는 청중들에서도 아무런 동요없이

그저 앵무새처럼 외웠던 원고들을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시간은 점점 길게 느껴졌다.
‘오전 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후 시간은 어쩌야 하나’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강의를 하면서 이런 걱정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강의가 계속되면 될수록 청중의 실망스러운 태도와 냉소적인 반응은 점점 옅어지고
오히려 강의 설계에 대한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강의 전날까지 매만졌던 슬라이드는 더 보완할 게 없겠다 싶었는데.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을 해야하나를 걱정할 정도의 부족함이다.

시련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련을 통해 느끼는 고통은 실존한다.
오늘의 시행착오는 과연 내가 강의에 대한 자질이 있는가를 곱씹어 보게 한다.
이 실패를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건 큰 고민이다.

오늘 경기의 스코어가 슬프지는 않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승패에 대한 분함과 아쉬움이 남아야 하는데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음이 슬프다.
그래도 걷겠다.
올해까지는 걸어보련다.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닐지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 들었다.
그 순간 내 슬럼프는 바닥을 쳤음을 느꼈다.
그 길의 끝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고 불안하지만 궁금하다.

About the author

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Add comment

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Categories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