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은퇴 후의 삶

어느 날 저녁, 대학 동기와의 식사자리에서
동기는 나와 안면식이 있는 친구 근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는 최근 잦은 이직과 이혼으로 힘들어했는데
얼마 전 새로운 일을 찾았다고 했다.
물류 상하차 일이었다.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차도 새로 장만해야했다.

그는 새벽 4시 30반에 일어나 상하차를 위한 물류창고를 향한다.
물류창고에 도착해 물건을 상차하고
그 날 배달해야 할 매장들을 돌아다닌다.
일은 오후 2시에 끝난다.

집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잠깐 쉬었다가
또 다른 배송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급여생활자를 할 때 받던 월급에 한 참 모자르기 때문에
가정경제에 좀 더 보탬이 되고자 스스로 2탕 뛰기를 선택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이 되고
다음날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에 든다.
그럼에도 그가 버는 돈은 직장생활을 했을 때보다도 적다고 했다.

친구는 씁쓸하게 술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 녀석이 우리 은퇴 후의 길을 먼저 걷기 시작했다고.
나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저 길이 머지 않아 나의 길이 될지 모른다고.

나도 그 녀석처럼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욕구들을 다 내려놓고
가장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에 전력을 다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라는 자기 존재는 사라지고
노동의 존재,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죽는 날까지 살아가야하는 삶.

만약 내 인생에서 그 배역이 주어진다면
그 첫 날이 내 영혼의 사형선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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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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