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인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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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민들이 가득한 동북지역에서 소위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태어나 살아야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을 부끄러워했고, 타인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유년기시절부터 다섯번의 자살을 시도한 끝에 성공(?)했던 삶을 마감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내가 읽었던 <인간실격>의 줄거리였습니다.

작가의 삶과 작가의 상상력이 뒤범벅 되어 어디까지가 그의 삶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체적으로 이 소설은 자신의 수기가 담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소설은 참으로 지독하게 우울하고 음침하며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밝은 로맨스를 좋아하는 영화광이 팀 버튼의 영화를 처음 본 느낌이랄까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 드는데, 이 소설만큼은 징글 맞을 정도로 자기 환멸과 패배의식이 서술되어 있어 얼마 있지도 않은 내 안의 감수성을 끌어오기가 벅찼습니다. 이런 점이 위에서 언급한 느낌을 받게 한 주된 요인이겠지요.

슬픔에 마주 칠때도, 분노에 마주칠때도 주인공은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사랑하는지도의심스럽지만) 여자가 능욕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까지도 그는 제3자처럼 행동하고 반응했으니까요. 심지어 그걸 의식하는 자신의 사유조차도 허무로 종결짓는 그 대목에서는 기가 찰 정도로 자신의 감정묘사 하고 있습니다.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때는, ‘어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이런 제목이 붙었나?’를 생각했었지만 그걸 떠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목숨을 이렇게 헛되이 허무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제목은 적절하다 싶습니다. 오히려 범죄적인 형량차원에서 이런 제목을 지었다면 오히려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지만, 자신이 태어난 것은 결정할 수 없었다’라는 문구처럼 일본 문화에서는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해서는 약간 미화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런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고와 문화에 대해 옮긴이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자살을 종교적인 렌즈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그것을 식자층들의 특유한 논리로 합리화가 있는 것은 그리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이토록 자기 환멸이 처절하게 기술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왜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 수 밖에 없었을까?’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소설은 또 다른 세상의 그저 그런 찝찝한 이야기일지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팀장님의 가르침이 생각나 리뷰를 좀 더 붙잡아 보았습니다.

다지이 오사무가 살던 시기에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망국으로써 윤리적 기반을 잃은 일본 사회의 무력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보이는 그룹(?)들이 있는데 이를 <무뢰파>라고 부릅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대표주자이긴 하지만 이외에도 몇몇의 문인들이 더 있습니다. 시대적 환경도 환경이지만 주인공이자 저자는 천성적으로 유약한 성격을 타고 난 것도 있는지라, 이 두 조건의 결합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 혹은 이런 삶이 창조될 수 있지 않았나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자기계발류가 던지는 자기긍정성, 주도적인 성취성향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 그 반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겪고 있는 그 힘겨움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 대해 사유하고 비판하는 생각들을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책의 리뷰에는 의외로 많은 긍정적 덧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게 했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에 대한 찬사가. 그 만큼 그가 처한 힘겨움과 우울한 감정들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다소 불편하지만 내가 감정을 필터링 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문학을 읽어내는 힘이 딸리는 것인지는 제가 좀 더 수련을 쌓다보면 알게 되겠지요.

삶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상 고통스러운 것도 아닐 겁니다. ‘인생은 순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라는 자기계발적 메시지를 쓰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한없이 환멸과 패배의식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전후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이 희망 없음을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삶에 시대적 상황이 투영되었을 뿐이고 이를 후세 사람들이 의미를 붙였을 뿐이니까.

최근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새로운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읽었던 책에 대한 느낌이 두 번 든다는 점입니다.
한 번은 책을 읽을 때,
또 한 번은 그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쓸 때..
이런 유익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런 지적 즐거움은 계속 붙잡고 싶은 생각이 있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선생님은 왜 내게 이 책을 제게 권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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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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