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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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재산에 눈이 멀어 부모를 내치는 두 딸, 야망을 실현하고자 형과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서자 그리고 한 남자를 쟁취하기 위한 두 자매의 욕정이 얽히고 얽혀 종국에는 모두가 파경을 맞이해야 했던 작품 <리어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탐욕’이다. 물론 <햄릿>에서도 숙부의 욕심이 사건의 발단이 되긴 하지만 <햄릿>의 초점은 햄릿왕자의 내면갈등과 심리가 중점인 반면 <리어왕>에서는 그릇된 욕망이 빚어내는 사건과 인물들의 뒤엉키는 파국의 과정과 결말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는 차이가 있겠다.

400여년이 지난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셰익스피어는 대중들을 다룰 줄 알았다는 점이다. 383페이지에서 시종2의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저런 것들이 잘산다면 나도 무슨 악행이든지 저지르리라”라고 말하는 것 – 악한자들을 벌하는 권선징악으로 쉽게 매듭짓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불효를 넘어 천륜을 거스른 두 딸을 죽음으로 심판함과 동시에 정의로 상징될 수 있는 코델리아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을 사건과 사건으로 얽히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치지 않도록 그렸냈다. 거기다 각 캐릭터들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자화상까지 투영시켰으니 작품의 위대함을 칭찬할만한 이유를 더 찾게 된 셈이다. 현대물과 비교해 봤을 때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우매한 실수를 딸들로부터 보답받게 되자(?) 미쳐버리는 리어왕의 장면. 두 눈이 뽑힌 글로스터가 자신의 아들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한탄하며 에드가와 재회하는 장면, 코델리아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리어왕의 장면 등은 4대 비극 중의 비극으로 꼽는 <리어왕>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오히려 영국에 낭만주의 사상이 퍼졌을때는 셰익스피어가 그린 원작의 결론을 대중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코델리아를 죽이지 않고 두 언니들을 벌한 후, 에드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결론으로 바꾸어 상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만큼 셰익스피어가 그린 <리어왕>의 비극이 주는 강력함과 함께 불편한 진실을 담는 마력이 있다.

 

Feature 01
<리어왕>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왔는데, 저주의 언어들이 과격하기도 하지만 낯뜨거운 성적 표현으로 씌여졌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가 이런 성적표현에만 함몰되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저주의 언어를 담아야 할 상황과 캐릭터에 대해서만 적용했으니 말이다. 몇 대사들을 인용해 보자면…

리어 : 만약 이년의 몸에서 자식을 낳게 할 뜻을 가졌다면 멈추어다오. 이년의 배를 불모지로 만들어다오. (325)
리어 : 이런 일로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는 날에는 네 눈동자를 도려내어 헛되이 흘리는 눈물과… (326)
리어 : 네가 기쁘지 않다면 그런 딸의 어머니는 분명히 화냥년일거야. (326)
애드가 : […] 마님의 색정을 채워주느라 컴컴한 곳에서 정사도 했죠. (367)
고네릴 : 진절머리나는 그의 잠자리에서 저를 구출해주세요. 수고하신 보답으로 그 잠자리를 당신께 드릴테니까요. (408)

다시 읽어봐도 쎄긴 쎄다. <햄릿> 리뷰에서도 썼지만 당시에는 깡패, 소매치기, 창녀들과 같이 다양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연극을 보러왔기 때문에 상류층들이 아닌 대중의 언어에 맞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330페이지에서 광대가 여성 관객들에게 향해 이야기하는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이런 의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광대 : (관객에게) 지금 히히거리며 웃고 있는 처녀들아, 웃지 말라. 남자의 물건을 잘라버리기 전에는 처녀성 결단나는 것도 시간문제일테니까. (330)

 

Feature 02
<햄릿>과 다른 <리어왕>의 또 다른 특징은 <리어왕>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주요작품에서 은유와 환유의 대사들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런 메시지들을 정리하면서 극을 이끌어가거나 의미심장한 말을 등장인물들에게 던지는 역할을 바로 광대라는 캐릭터가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블로거의 표현대로 ‘<리어왕>에서 가장 정상에 가까운 캐릭터는 광대 밖에 없다’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막내딸을 내쫓는 바보짓을 한 리어왕에 대한 관객들의 답답함을 이 광대가 대신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겠구나’는 생각도 들었다.

광대 : 충실한 개는 개집에서 쫓겨나 매질만 당하고, 아첨쟁이 암캐는 따뜻한 난롯가에 누워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지요 (319)
광대 : 아저씨는 이 노래 아시죠? 바위종다리가 뻐꾸기를 길렀다가 결국에는 먹혀 버렸네. 그래서 우리는 어둠 속에 남게 되었네 (323)
광대 : 제 머리를 쑤셔 둘 곳을 달팽이는 딸들에게 주지 않지요. (329)

광대의 역할은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리어왕>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보이지 않는 씬 스틸러(Scene Stealer)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가 생각하는 악의 정의 혹은 탐욕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Note 01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탐욕들이 이해되지 않고 과장되었다는 의견들을 리뷰에서 간간히 접할 수 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원래 탐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못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니까. 우리는 아동성폭행, 근친상간, 자녀살인 후 유기, 묻지마 살인 등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는가? 오히려 중세인들이 현대인들을 보고 야만인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사실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RSS로 즐겨구독하고 있는 한 블로거는 <리어왕>의 후기를 ‘도덕론자 대 현실론자’라는 명제로 압축해서 해석하고 있었다.

도덕적 천륜의 정당성을 중요시한 리어 왕, 코딜리아, 올바니 공작과 같은 인물들은 냉혹한 현실의 정치가와 동떨어진 ‘도덕론자’로 치부된다. 이와 반대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너릴은 마키아벨리의 말에 따르면 현실을 직시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가로써, 이상적 군주상에 걸맞은 인물이 될 수 있겠다. ([출처] 127. 리어 왕, “도덕론자 대 현실론자”|작성자 홍)

도덕적으로 보자면 코델리아가 이겨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렇듯이 반드시 도덕이 승리하는 것이 아님을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부모자식이라는 천륜문제를 명분삼아 [도덕론자 대 현실론자]라는 대결구도를 보여주는 극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Note 02
셰익스피어의 비극 단편선들은 분량이 많지 않기도 하고 현대의 시각에서 읽다보니 <햄릿>처럼 인상적인 감흥이나 여운이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나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으며, 글을 쓰다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햄릿>때 그랬던것처럼.

책을 읽을 때보다도 리뷰라는 글을 쓰면서 작품을 더 음미하고 사색하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나는 좋고, 나는 그것을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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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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