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베니스의 상인

B

01.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 덩어리를 떼어가라’라는 명판결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었기에 그 시대적 특성이 그가 남긴 희극과 비극에 많이 담겨져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이라는 사회이슈가 샤일록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작품은 전개된다. (물론 제임스1세 시기에도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리어왕>에서 글로스터의 이야기가 보조플롯으로 추가되어 극을 풍성하게 했듯이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도 ‘유대인 고리대금업’이라는 주 플롯 말고도 3개의 플롯을 에 더 추가해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주인공 안토니오와 그 친구가 보여주는 우정 그리고 세가지 선택이라는 시험대의 구혼에 관한 이야기. 사랑을 찾아 도피하는 샤일록의 딸 제시카의 이야기가 그렇다. 출판사의 매끄러운 번역이 좋기도 했지만 이 3가지 플롯이 잘 버무려진 탓에 400년 전의 작품이 지금에도 재미나게 읽힌다. 이렇듯 시대과 인종을 넘은 보편성을 획득한 Humanitas의 힘이 담긴 고전문학들의 위대함이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다.

 

02.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해상무역의 발달로 상업이 번영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부업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대부업은 누구나 다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상업에는 대부업은 없어서는 안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에게 가장 미움을 받는 유대인들에게 이 역할이 맡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다. 대금업 초기에는 이윤을 남길 수 없었으나 칼뱅 때에 그 조건을 완화시켰다는 사실도 같이 찾아볼 수 있었다.

법정에서 샤일록은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도 다 필요없으니 자신은 오직 차용증서대로 집행하길 바랄 뿐이다’고 자신의 주장을 마치고 칼을 가는 대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좀 웃겼음. 재판정 한쪽 구석에서 전의를 불태우며 칼을 가는 그 배우를 생각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안토니오의 친구들은 그런 샤일록을 향해 <리어왕>에서 볼 수 있었던 과격한 저주의 언어를 샤일록에게 퍼붓지만 샤일록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이 대목은 당시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또 그에 앞서 샤일록이 왜 이렇게까지 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미덕인 ‘자비’를 거부하면서까지 감정적으로 대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은 당 시대를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억울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 그들의 심정이 나름 이해가 되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돈만 아는 파렴치한 악마같은 자식으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욕하며 침뱉는 유대인들의 숙명에 대한 한서림이 어찌 없겠는가. 셰익스피어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샤일록의 항변을 잘 표현해 놓았다. 셰익스피어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03.
현명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포샤라는 인물은 모든 남성들로 하여금 자기 배우자에 대한 이상향을 꿈꾸게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녀가 보여준 남편 바사니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지혜롭고 헌신적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로 하여금 이상형적인 여성상을 꿈꾸게 한다. 구혼자를 시험하는 상자 선택에 대한 플롯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등장했고 이후에는 바사니오를 거쳐 주인공 안토니오의 재판 플롯으로 합쳐지게 된다. 각 플롯은 독립적으로 시작하나 극이 전개될수록 플롯들이 합쳐지는 연출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써의 재능이 유감없이 표현되는 대목이다. (영화 ‘Love Actually’는 플롯의 교차와 통합에 대한 힘을 보여주는데, 이런 점이 영국 문학과 예술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

포샤는 자신의 하녀와 남장으로 변장하고 법정에 출두하여 자기 남편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구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의 집착을 극대화시켜 안토니오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관객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갈등이 최고로 고조되었을 때, 포샤가 등장하고 법학박사로 분장한 포샤는 지혜로운 판결로 그 갈등을 한 순간에 정리한다. 그 명판결에서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글로브 극장에서 이 연극을 상영할 때 관객들이 모두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을 풍광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04.
재판이라는 주 플롯이 끝나자 극이 끝날 줄 알았는데, 셰익스피어는 반지라는 플롯을 곁들여 또 다른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법학박사로 남장을 한 포샤는 짖궃게도 바사니오가 자신의 아내를 평생토록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 반지를 판결에 대한 답례로 요구한다. 이에 바사니오는 친구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준 법학박사에게 기꺼이 선물한다. 집에 돌아온 포샤는 반지에 대해 묻고 이를 추긍하며 바사니오에게 소위 말하는 약점을 잡는다. 이 부분은 또 다른 갈등의 재앙으로 전개되지 않고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로 극은 마무리 된다. 이 부분은 남자들이 사랑보다 우정을 더 선호하는 (여자들이 보기에) 바보같은 행동들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나름 공감가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여전히 우리네 남자들은 이런 선택 때문에 자신의 연인들과 자주 싸우기도 하니까.

 

05.
<베니스의 상인>의 리뷰를 준비하며 이 작품에 깔려 있는 음모론이라는 비평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의의 제기가 참 흥미롭다. 첫째는 재판과정의 문제점이다. 명실상부하게 판사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학박사라는 이방인이 와서 그 판결을 내린다는 점인데 샤일록에게는 불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겠다. 또한 1파운드의 살이라는 계약문구에는 피도 함께 가지고 간다는 게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라는 점인데, 이는 충분히 논쟁이 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본다. (항상 법정의 시시비비는 해석에 달려 있지 않는가?)

또한 포샤를 비롯한 주인공 안토니오 진영은 ‘자비’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면서 돈만 아는 샤일록의 이미지와 대비시킨다. 지금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기독교인들의 사랑은 자신의 종교를 믿는 형제와 자매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여전히 이교도들에게는 냉대하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는 겉과 속이 다른 이런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그런 의도를 작품 속에 포함시켰는지 아닌지는 내 안목으로는 판단히 힘들다.

이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이다’
그러니 문학작품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과 심층적인 분석 그리고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좋지만 어쨌든 이는 문학작품이 아니던가. 셰익스피어가 당대의 상황을 그가 만든 캐릭터들이 풀어가는 이야기 힘, 그 자체를 느끼고 즐기는데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그런 관점과 해석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해 주는 유익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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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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