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어떻게 살 것인가?

B

01. 몽테뉴와의 만남, 사건
내가 ‘몽테뉴’라는 이름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이 언제인가를 떠올려 봤다.
그리고 생각해 냈다.
그 마지막은 고등학교 역사시간이었지.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의 추천에 의해 사라 베이크웰이라는 작가가 쓴 책으로
600년 전쯤에 살았던 프랑스 작가 몽테뉴를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게 몽테뉴와의 (만남의) 시작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수상록>이라는 재미때가리 없는 책을 읽긴 했으나 그건 그냥 스쳐갔던걸로 해두자)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저자 사라 베이크웰은
몽테뉴가 지은 <에세 ESSAIS>라는 책을 20년 전 부다페스트의 어느 헌책방에 들렀다가 처음 만났다고 한다.
헌책방에는 영어로 된 책이 그 책 밖에 없었으며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그 만남에 대해 특별히 운명에게 감사를 돌린다고 저자 후기에 소감을 밝혔다.

나 역시 이 책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에 이런 만남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보고 싶다
몽테뉴와 사라 베이크웰과의 만남에는 연지원이라는 다리(Bridge)가 있었음을.

 

02. 책에 대한 만족과 기쁨 그리고 지적유희
사라 베이크웰이 지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 책은
‘부분적으로는 몽테뉴가 긴 세월동안 지성의 운하를 통해서 흘러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에세 (Essais)>라는 책의 유익과 특징 그리고 몽테뉴의 일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테마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인데
아주 뛰어난 저자의 조사력과 통찰 그리고 전문성이 담겨져 있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사라 덕분에 이 책 뿐만 아니라 몽테뉴라는 사람에 흠뻑 빠져 보냈던 2주간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2014년이 상반기도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읽은 올해의 책으로 <모든 것은 빛난다>와 함께 이 책을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
그 만큼이 이 책이 너무나 좋았다.

책의 표지에 인쇄된, 구매욕구를 자극시키려는 <2011 아마존닷컴 올해의 책>이라는 마케팅 플래그(Marketing Flag)에 고개를 가로 저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양키놈들도 책 볼 줄 아는구나’

이 책의 절반은 5월의 황금연휴기간동안 캠핑장에서 읽혀졌다.
책이 캠핑장에서 뒹군 덕분에 책은 모닥불의 향기로 훈제되어 있었다.
리뷰를 위해 책을 만지막 만지작할 때마다 풍기는 그 냄새는 캠핑장에서 읽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문장을 쓸 때마다 내가 점점 지식인이 된 듯한 자뻑에 도취된 내가 보인다.

이 조잡한 지적 허영심이 때론 나를 성장하게 하는 듯하여 당분간은 버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에 따른 세상으로부터의 혹독한 피난은 나만의 맷집으로 견뎌내야겠지)

 

03. 훌륭한 저자, 사라 베이크웰
대체 사라 베이크웰이 책을 어떻게 썼길래
좀처럼 칭찬에 인색한 내가, 호평으로 가득 채워진 리뷰를 쓰게 되었을까?
이런 내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며 복잡미묘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글이라는 건 참 놀랍다. 쓰면 쓸수록 내 안에 있는 온갖 별난 모습을 보게 되니 말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때도 그랬듯이 나는 저자의 통찰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책을 선호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실례가 진부하지 않으며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로 채워져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형태의 책에는 늘 후한 점수를 준다.
더구나 최근에 익숙해진 고전 테마가 장착되었으니 더욱 이 책에 찬미할 수 밖에.
앞서 이야기 했듯이 사라 베이크웰의 만남 이전에, 나는 전에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은 적이 있긴 하다.

‘프랑스 시골에 살던 옛날 노인네 하나가 시시콜콜하게 적은 자신의 다이어리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그 때에는 당췌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때는 까막눈이라 그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엔 때가 너무 일렀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수업과 사라의 책을 통해서
<수상록>이라고 변역된 원제 <에세>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몽테뉴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살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에세>가 가진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가 지은 이 책은 굉장히 친절하다. 높은 수준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이 없다.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엄청난 독력을 가진 독서가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나를 알라딘 사이트보다 레고 사이트를 더 자주 클릭질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보고 있으니까)

사라는 책 중간마다 반복적으로 <에세>가 가지는 의미와 시대의 평가들을 정리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형성된 다양한 관점의 자세들이 어떻게 <에세>를 해석하고 있는지를
마음씨 착한 제라드의 빨간펜 선생님처럼 차근차근 이야기 해준다.
그러니 약 5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와 난이도에 대한 두려움은 안 가져도 좋을 듯.
(그래서 이 책이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식자층들의 고유한 거들먹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

 

04. 에세가 매혹시킨 매력
몽테뉴라는 프랑스 노인네가 쓴 다이어리, <에세>에 대해 수 백년간, 시대가 주는 빈정거림과 선입견은 존재해 왔다.
327 page에서 사라는 이 부분을 언급하는데,
책에는 위대한 업적이 있으면 그런 업적이나 기록해야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시시콜콜 기록한다는 것은 이 책은 성공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음을 말이다.

하지만 몽테뉴는 그러지 않았다. 동시대 프랑스의 라이벌 영국과 스페인은 대항해시대를 개척하여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종교전쟁으로 인한 지독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찰한 내용과 내면적인 삶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몽테뉴는 시대적인 금기를 깨고 있었다.

이런 부분은 책에서 거듭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는데, 그만큼 몽테뉴라는 인물이 가진 고유한 강점이자 <에세>의 특징을 말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겠다.

노년에 몽테뉴가 수양딸로 삼은 구르네라는 여인 뿐만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독자 사람들이 <에세>를 읽으면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며 느꼈던 체험과 찬사들이 책에 기술되어 있다. (이 점이 에세의 가장 강력한 강점이다)

– 그는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 (앙드레 지드)
– 여기 나의 ‘나’가 투영된 ‘너’가 있다. 여기서는 너와 나의 간격이 모두 사라진다 (슈테판 츠바이크) (428)

나 역시 이 찬사들에 깊게 공감한다.

수백년에 걸쳐서 책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서 몽테뉴와 미래의 모든 독자를 연결하는 기다란 사실이만들어진다라고 저자가 말하듯, 몽테뉴의 <에세>를 통해서 하찮은 나 역시도 그와 너무나 비슷한 나 자신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나의 이 조악한 표현을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적인 작가답게 멋드러지게 표현했다.

수많은 마음이 모두 한 가닥 실에 꿰여 서로 엮여 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도 플라톤과 에우리피데스의 마음과 아주 똑같다. […] 이렇게 공통적인 마음이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 그러므로 온 세상 그 자체가 마음이다”

 

05.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책은 총 20장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답이 각 장별로 실려 있으며
각 장에는 몽테뉴의 삶의 연대기를 잘 녹여내고 있다.
각 장에서 말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는 구절>로 대체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몽테뉴의 삶을 통해 사라가 제시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법 중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것으로 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고 머뭇거려지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쉽지 않았다’라는 의미는 20가지의 철학적 지침들이 한꺼번에 내 눈앞으로 몰려오는 느낌이라
그 하나하나들을 분석하기에는 명제들이 너무나 거대하고 묵직하기 때문이다.
(분석, 비평적인 태도가 나의 몇 안되는 강점이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 수준과 무게감이 너무 크다.)

온라인 서점 Amazon.com의 리뷰에 ‘책이라기 보다는 평생의 동반자’, ‘침대 옆에 늘 놓아두고 있고 싶다’라는 후기처럼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느껴진다.

몽테뉴가 자신이 과거에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에세>와 함께 20년 동안 함께성장했듯이 나 역시도 그런 지속적인 성장태도를 취하는 것이 몽테뉴가 이야기 한 아모르파티, 내 삶의 행복을 더 드높여 주지 않을까?

 

06. 책이 준 만족과 유익
재미나게 읽었던 <마담 보바리>를 지은 플로베르는 몽테뉴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접근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려주기도 한다.(p21) 그리고 이 문구는 상당히 도발적이기에 책 판매를 위한 슬로건으로도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하다.

<에세>는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그 책은 살기 위해서 읽어라>

하지만 나는 사라 베이크웰이 쓴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는 기쁨보다 <에세>라는 작품의 위대함과 신성성, 그리고 몽테뉴가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이 취했던 철학적 삶의 자세를 알게 된 것이 더 유익했으며 그런 앎은 지적 유희로써의 배가되었음을 밝혀둔다.

몽테뉴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과 삶을 다르게 관찰한 것처럼 나 역시 나만의 시각으로 이 책을 접하고 읽었다고 말해보고 싶다 (이것이 합리화인지, 나만의 방식으로 몽테뉴의 철학을 체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정도로 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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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ymiae

글쓰기를 통해 내적 평안함을 얻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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